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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지금 다시 꺼내야 할 문제작 (격차, 자본, 자동화)

by 잡학창고A 2025. 12. 4.

메트로폴리스 영화포스터

프리츠 랑 감독의 1927년 작품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는 영화사 최초의 본격적인 SF 장편 영화이자, 오늘날까지도 사회 구조와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으로 남아 있다. 산업화와 기술 발전, 계급 격차에 대한 경고는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자동화와 자본 집중, 계층 분화가 심화되는 2024년 현재, 메트로폴리스는 단순한 고전이 아닌, 현실을 투영하는 거울이자 경고문이다.

격차 사회의 이미지화, 고전이 된 예언

메트로폴리스는 상층부의 엘리트 계급과 하층부의 노동자 계급으로 철저히 분리된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이 이분법적 구조는 단지 시각적 연출에 그치지 않고, 계급 격차가 일상화된 사회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상층부는 빛나는 도시, 우아한 공간, 여유로운 삶으로 대표되며, 하층부는 어둡고 기계가 돌아가는 음습한 공간에서 반복되는 노동의 삶을 보여준다. 영화 속 주인공 프레더는 상층부 지도자의 아들이지만 하층 노동자들의 삶을 경험하며 사회 구조의 부조리를 목격하게 된다. 이는 ‘위와 아래’의 구조 속에서 인간성과 정의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프리츠 랑은 단순히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건축, 조명, 미장센을 통해 격차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한다. 2024년의 현실을 돌아볼 때, 우리는 여전히 이 상하 구조 속에 살고 있다. 부동산 문제, 교육 격차, 지역 간 소득 불균형은 그 시대보다 더 정교해졌을 뿐, 본질은 유사하다. 메트로폴리스는 “격차는 시스템이 만든다”는 명제를 영화적으로 입증한 선구적 작품이다.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가치

영화에서 하층 노동자들은 하나의 개체가 아닌, 기계의 부속품처럼 그려진다. 동일한 복장, 무표정한 얼굴, 반복되는 동작은 이들이 자본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기능화되고 있는지를 상징한다. 이는 인간을 ‘노동력’으로만 소비하는 자본주의 구조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흥미로운 점은, 메트로폴리스가 그리는 자본의 논리는 비단 경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감정, 사상, 예술까지도 통제의 대상이 되며, 이는 오늘날 ‘자본이 감정을 지배하는 시대’와도 맞닿는다. SNS 알고리즘에 따라 사고하고, 플랫폼 속 가치 기준에 맞춰 표현하는 현대인의 삶은 이 영화에서 묘사된 통제 사회와 무섭도록 닮아 있다. 무엇보다 프리츠 랑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면서도 단순한 반자본주의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는 자본, 노동, 감정이 연결되는 ‘중재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중재자는 인간성과 시스템 사이에서 의미 있는 균형을 이루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즉, 영화는 이념의 승패가 아니라 인간 가치의 회복을 궁극적인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자동화의 그림자,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때

메트로폴리스에서 가장 강렬한 상징 중 하나는 여성 로봇 ‘마리아’다. 이 로봇은 인간의 외형을 지닌 채 등장하지만, 사람들을 선동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존재로 기능한다. 이 설정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고, 오늘날 AI 기술과 로봇 산업의 발전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연결된다. 2024년 우리는 실제로 인간을 대신하는 인공지능, 자동화 시스템을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있다. 단순 노동뿐 아니라, 창작, 판단, 의사결정 영역까지 기계가 침범하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메트로폴리스는 이러한 기술 발전의 방향성이 인간을 위한 것인지, 시스템 강화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로봇 마리아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며 대중을 움직일 때, 영화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한다. 이것은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닌, 오늘날 우리가 겪는 ‘가짜 뉴스’, ‘가상 인플루언서’, ‘딥페이크’ 등 현실적 위협으로 확장된다. 100년 전 만들어진 영화가 지금의 우리에게 이렇게 정확히 말할 수 있다는 점은, 기술 발전만큼이나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결론: 고전이 아닌 경고문으로서의 메트로폴리스

메트로폴리스는 단순한 무성 영화나 고전 SF가 아니다. 격차, 자본, 자동화라는 키워드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핵심 이슈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읽는 거울로 다시 꺼내야 할 문제작이다.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 곧 오늘의 사회를 다시 해석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