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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책은 마사 C. 누스바움의 동물을 위한 정의입니다. 마사 C. 누스바움은 동시대 철학자 중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딸 때문입니다. 누스바움의 딸은 동물 관련 활동을 많이 하는 변호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병에 걸려 세상을 일찍 떠나게 됩니다. 그 이후로 딸이 큰 관심을 가졌던 동물 문제에 대한 많은 철학적인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동물을 위한 정의라는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동물을 위한 정의

인간이 가진 윤리적 잣대를 바탕으로 동물을 판단하려고 하면 안된다

이 책의 핵심질문 중 하나는 우리가 인간이 가진 윤리적 잣대를 바탕으로 동물을 판단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저자는 우리가 인간처럼 행동하는 동물을 보고 좋아하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인간 같지 않은 동물을 볼 때 존중할 만한 가치를 못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누스바움은 인간과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동물의 가치를 평가하려는 전통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고 주장합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 가장 널리 퍼졌었던 철학 중에 하나는 스토아 철학입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신이 가장 절대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그다음에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에는 유일하게 신과 닮은 이성을 지녔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이성의 힘을 통해서 신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나머지 동물들은 다 무지 속에 빠져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관점을 기독교 사상에서도 이어받았습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서열의 차이가 있다는 의식이 계속해서 유지돼 왔습니다. 그런데 근대에 들고 현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동물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동물에게도 존중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에 대해서 논리가 필요해집니다. 이때 사람들이 전통적인 사상에 입각해서 주로 품게 됐던 생각은 동물들도 인간과 비슷한 점이 있더라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인간과 동물은 절대적인 서열로 나뉘어 있다기보다는 어떤 부분에서는 동물들도 인간과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동물도 인간처럼 존중해줘야 한다라는 논리를 펼치게 된 것입니다. 동물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자 중에는 이런 관점을 가지고 몇몇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동물을 보고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동물, 인간과 비슷하게 다른 동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동물, 인간과 비슷하게 감정을 느끼는 동물이라는 식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스바움이 보기에 이런 사고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인간과 비슷하지 않은 동물은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동물에게는 가치가 없다라는 생각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겁니다. 누구를 존중할 거고 누구를 존중하지 않을 건지를 인간 중심적인 기준을 통해서 계속 결정하게 된다는 겁니다. 단순히 개인이 그런 가치관을 가지면 문제될 건 없습니다. 문제는 학문적인 영역에서 이런 종류의 논의들이 오가는 것입니다. 이런 논의들은 실질적으로 법에도 영상을 끼치게 됩니다. 어떤 동물을 법으로 얼마나 보호할 것인가 이런 담론에까지도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겁니다.

동물의 존엄성을 판단하는 기준

그렇다고 해서 누스바움이 모든 생명체를 인간처럼 똑같이 존중하라는 주장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누스바음이 제시하는 기준은 각 동물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위해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고, 그리고 그 노력에 대한 침해를 과연 경험할 수 있는가라는 겁니다. 이걸 바탕으로 그 동물에게 존엄성이 있는지 아닌지를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얼핏 보면 모든 동물들이 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부 먹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생식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시간에 대한 감각이 딱히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느 정도 장기적인 플랜을 짜놓고 일정한 루틴에 따라서 삶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동물들도 분명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누스바움이 보기에 소 돼지, 닭 등은 대표적으로 장기적인 계획과 고유의 루틴 속에서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 노력할 줄 아는 동물들입니다. 그리고 인간이나 어떤 요소에 의해 매일매일 추구해 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때 굉장히 불행해할 줄 아는 동물들입니다. 누스바움은 이렇게 노력에 대한 역량이 있고, 그리고 그 노력을 방해받는 것에 대해서 불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런 동물들 같은 경우에는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노력하는 동물들만 존중하라고 말하는 건 결국에는 인간을 중심으로 다시 판단하는 거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또한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관점과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스바움의 주장은 인간과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동물을 존중해야 하는가에 대해 기준을 제시하지만 근본적인 근거가 다른 것입니다.

경의는 동물의 존엄성을 인식하는 경로이다

동물을 위한 정의에서 누스바움이 가장 강조해서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경의의 중요성입니다. 누스바움은 경이라는 감정이 우리가 동물의 존엄성을 곧장 인식하는 경로라고 주장했습니다. 저자가 생각한 경의는 어떤 대상을 볼 때, 그 대상도 자신 고유의 관점이 있는 것으로 상상되는 겁니다. 근데 문제는 우리는 1인칭의 관점밖에 갖지 못합니다. 나와 다른 생명체 사이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점의 벽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생명체를 볼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생명체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무엇을 느끼며 살아갈까라는 식의 상상의 나래가 펼쳐질 때가 있습니다. 관점의 벽을 극복할 수는 없지만 각자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 것입니다. 누스바움은 이런 상상의 나래가 펼쳐질 때 그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고 하나의 대상에 오래 집중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대상의 고유한 관점을 마주하고 그것을 상상했을 때 드는 경이의 감정을 잊고 살아갑니다. 결국 누스바움은 우리가 대상의 본질보다는 겉모습만을 빠르게 경험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이의 감정을 잊은 상태에서 동물에 대한 존중을 판단하면 단순히 논리적인 답변을 생각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논리적인 답변 중 대표적인 것이 인간과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동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반면 경의의 감정에 주목한 상태에서 생명체를 살펴본다면 존중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는 게 누스바움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인간 중심적으로 동물을 바라보고 있는가

동물을 위한 정의라는 책은 우리가 평상시 얼마나 인간 중심적 사고로 동물을 바라보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물론 동물에게 관심을 가지고, 호감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근거가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만들어 놓은 기초에 의한 것은 아닐까요? 한 번쯤은 다른 관점에서 동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결과적으로 동물 윤리와 관련하여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현대 동물 윤리학에서 많이 거론되는 공리주의적인 관점이나 칸트의 의무론에 기초한 이론 등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그 관점들을 바탕으로 누스바움 고유의 견해를 전개합니다. 이 책은 동물 윤리와 보호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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