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우리가 노자에 대해 아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거의 전부일 겁니다. 상선약수, 무위자연 이런 말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억지로 뭘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산다는 말이 참 좋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자는 다분히 정치 철학적인 사상을 가졌습니다. 노자의 사상을 단순히 개인의 삶에만 비추어 해석하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노자의 철학은 그냥 속세를 떠나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자연친화적인 것이 아닙니다. 노자의 철학은 국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또 갈등이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 합의에 이를 수 있는지 보다 큰 스케일의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노자의 철학은 대충 훑어봤다가는 그 의미를 오해하기 굉장히 쉽습니다. 아무래도 말들이 알쏭달쏭하게 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노자의 철학에 대해 이해해 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책 제목은 나 홀로 읽는 도덕경입니다. 최진석 교수님이 노자의 도덕경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지, 노자의 도덕경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굉장히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나 홀로 읽는 도덕경 안에서 특히 강조되어서 소개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나 홀로 읽는 도덕경

세상을 고정적으로 바라보지 마라

노자는 세상을 고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예를 들면 공자는 사람에게는 인이라고 하는 본질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본질적인 개념을 통해 인간의 윤리적인 삶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노자는 본질을 한 개념과 연동시키려는 시도 자체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물론 인이라는 개념 같은 것을 사용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진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인이라는 개념이 정말로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하는 그런 이상적인 것이라고 딱 체계를 잡아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점점 인이라는 개념에 집착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인과 인이 아닌 것에 대해 구별할 필요성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에 포함되는 것들은 추종이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인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은 반대로 공격과 무시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어떤 무엇 하나를 하나의 고정적인 개념으로 정립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일은 반드시 그 반대의 것을 소홀히 하거나 공격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전체적인 시스템이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고 왜곡되도록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전쟁과 평화도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명확하게 구별하고 평화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평화주의자들은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금기시하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하면 전쟁에 대한 억제력이 약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더 비참한 전쟁으로 이어지게 될 겁니다. 그래서 노자는 세상을 고정적인 하나의 개념을 통해 파악하기보다는 유연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와 명의 구별, 우리는 명을 추구해야 한다

지는 기본적으로 구별을 통한 앎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뭔가를 안다라고 생각하는 건 그 앎의 대상을 다른 대상들과 구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고양이가 뭔지 안다는 건 고양이와 개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자는 이러한 구별을 기반으로 하는지에 반대했습니다. 구별을 기반으로 하는지에 안주하다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을 나눠서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구별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명 같은 경우에는 똑같이 앎이라는 뜻을 가졌지만 지와는 다릅니다. 명이란 모든 것들이 서로 대립되는 것들과 상호 의존관계를 통해서 존재한다는 걸 통찰하는 지입니다. 지는 선과 악을 명확하게 딱 나눠서 세상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명은 선은 악과 대비되어서 선이 되고, 악은 선과 대비되어서 악이 된다는 상호 의존관계를 파악합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지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별합니다. 그렇기에 악은 공격하고 선만 추구합니다. 반대로 명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선을 실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거를 잘 압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조금 더 유연하고 다각적인 방법을 통해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겁니다. 노자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지가 아니라 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막상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오히려 지에 충실한 사람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명에 충실한 사람들은 항상 대립되는 것들이 왔다 갔다 하는 복잡한 변수들을 펼쳐놓고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의견을 낼 때 신중하게 여러 번 다각도로 살펴볼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에 충실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굉장히 답답하고 느리게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에 충실한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분류해서 파악하기 때문에 한쪽 편만을 고려하고도 자신의 의견에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관한 예시가 등장합니다. 이 세상을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로만 나누면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문제는 단순히 부자들의 욕심에 의해서 생겨난 문제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부자들을 규제하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안들이 얽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명의 능력을 갖추려고 하지 않고 지의 차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진영 논리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 큰 혼란이나 전체주의 등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고정된 이상보다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고 발현시켜라

노자는 어떤 이상이나 이념을 정해놓고 그것에 맞춰서 학습을 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찾고 발현시키는 데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이상향을 정해놓고 그 방향대로 내 자신을 바꿔나가려 하다 보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생깁니다. 이상향에 집착하다 보면 그 이념을 숭배하게 되고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할 것입니다. 노자는 고정된 이상향을 쫓아서 가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유롭게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최진석 교수님의 의견에 따르면 어떤 이상과 이념을 쫓아서 그 틀에 자신을 맞추는 방식의 학습 모델은 중앙집권화와 이데올로기가 중요했던 근대 시기까지는 잘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거대 이념만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보다는 그것을 뛰어넘어서 자율성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노자식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교육 방식이 현대사회에 더 적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정해진 길을 따라서 취업하고, 시험에 합격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나만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해졌습니다. 즉, 나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해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엄청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 안에서는 이 자율적인 삶에 대한 포인트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

이 책은 단순히 노자에 대한 해석을 주입시키는 책이 아닙니다. 경전을 숭배하기보다는 이 시대에 맞춰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입니다. 이러한 방향성 자체가 노자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와도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던져주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노자와 이 책이 주는 의미와 반대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보실 때는 비판의 눈을 가지고 문제점과 시대착오적인 측면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